Martial 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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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December 1
시력이 좋아진 것 같이 화창한 하루. 날씨 덕분에 하체운동임에도 아침에 기분 좋게 운동을 나설 수 있었다. 하체를 할 때면 유독 머신이 별로 없다는 게 조금 아쉬운 느낌. 종류별로 하나씩 더 있으면 참 좋을 텐데 ㅎㅎ 친구와 함께 건물 옥상 밖에서 몸을 풀었는데 진짜 햇살은 따땃하고 바람은 적당히 쌀쌀한, 컨디션이 절로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운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는 점심을 먹었다. 오늘부터 탄수를 꽤 많이 줄여서 그런지 먹긴 했는데 괜히 배고픈 느낌 ㅋㅋ 벌써 12월이라니 시간 정말 빠르다. 이제 곧 미국에 온 지 100일이 된다니.
이후에는 Noe Valley라는 고즈넉한 동네로 놀러 갔다. 전체적으로 다운타운보다는 훨씬 여유로운 분위기로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고 좋았다. 벌써 크리스마스 느낌이 나는 아기자기한 편집샵들이 많았고, 빵집에서 초코크로아상과 크랜베리스콘을 사서 입에 한가득 물고 여기저기 구경했다. 친구가 pottery painting을 했었던 공방(Terra Mia Ceramic Studio, 1314 Castro St, San Francisco, CA 94114)에도 들려 예쁜 도자기들을 구경했다. 매력적인 디자인의 그릇이 많아서 다음에 와서 해보려고 생각 중! 이곳저곳 구경하다가, 딱 봐도 내공이 상당해 보이시는 노부부가 하는 초콜릿 가게에 들어갔다. 샌프란시스코의 거리별로 저렇게 수많은 케이스를 가게 여기저기에 전시해 놓으셨고, 초콜릿은 생전 처음 보는 맛부터 다양한 형태, 조합 등 딱 봐도 진심인 느낌을 받았다. 한 손님이 특정 초콜릿에 대해 질문을 하셨는데 따발총처럼 어떤 성분은 몇 %가 들어갔고, 이건 전에 나오던 것과 어떤 점에서 다르고 등등 백과사전처럼 줄줄 말씀하셨다. 살짝 해리포터의 그 마술지팡이 파는 가게를 축소한 느낌 ㅎㅎ 한국에 있었으면 인기가 더 많으셨을 거다. 내 로테이션 멘토에게 줄 선물을 고르려 여러 편집샵을 돌아다녔고(결국 사지는 못했고 아마존에서 크리스마스 캔들을 샀다😅), 카페에 가서 라테를 마시며 블로그를 완성했다.
날이 정말이지 좋았기에 카페를 나와서도 이곳저곳 주변을 돌아다니며 예쁜 하늘을 여럿 남겼다. 그러다가 문득 주변에 Bernal Peak(1000 Bernal Heights Blvd, San Francisco, CA 94110)라는 작은 동산이 있어서 가보기로 했다. 사실 날이 맑아서 너무 가까워 보였는데 생각보다 거리가 있어 땀을 좀 뺐다 ㅎㅎ 정말 기가 막힌 전경이었다. 왼쪽으로는 서서히 노을이 져서 핑크빛 하늘부터 서서히 진한 주황으로 물들어갔고, 가운데로는 탁 트인 공간으로 샌프란시스코가 한눈에 보였다. Golden gate bridge, Bay bridge 모두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측으로는 Bay Area가 보여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 그제 어제도 느꼈지만 좀 이곳저곳 다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이런 곳에서 돈을 받으며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마음에 새겼다. 노을이 다 저물 때쯤 내려와 집으로 향했고, 도중에 chase center의 예쁜 트리를 담아봤다.
저녁을 먹고 다시 Hub로 가서 Proposal 발표 준비를 했다. 항상 같이 아침 수업을 같이 가는 친구 두 명이 내일 발표라서 Hub에서 연습하고 싶다고 해서, 같이 모의 발표를 했다. 역시 미리 실전처럼 해보는 것만큼 확실한 연습은 없는 것 같다. 한 친구는 저번에도 말한 한국계 미국인 친구인데(부모님이 두 분 다 한국분), 새벽 한 시 넘어서까지 내용을 좀 봐줬다. 이 친구가 내일 첫 순서이기도 하고 마트를 비롯한 차로 이곳저곳 잘 데리고 다녀줘서 고마운 게 많았는데 나름의 보답을 잘 한 것 같다. 난 수요일에 발표라, 월요일에 친구들이 발표하는 것을 보고 어떤 피드백이 나오는지 주의 깊게 들은 후 추가 수정을 해서 마무리를 하면 될 것 같다. 내일은 아침 8시부터 3시간 동안 쭉 발표를 듣는데 얘들이 어떤 참신하고 재밌는 연구 주제를 준비해 왔을지 기대가 된다!
Monday, December 2
Chembio 수업의 최종 proposal 발표 첫날. 아침 8시부터 11시 30분까지 쉬는 시간 없이 쭉 8명의 발표를 들었다. 친구가 그린 귀여운 mouse를 찍었었네. 발표를 들으며 내가 느낀 것을 간단하게 몇 가지로 정리해 봤다.
- 쉽게 쉽게 발표하자
- 목소리를 크게, 또박또박 말하자
- 가설이 들어맞지 않을 때의 2안을 생각해 두자.
첫 번째는 ‘쉽게 발표하자’라는 것. 전부 CCB에 소속된 학생, 포닥, 교수님들이 청중이었음에도 워낙 분야가 넓다 보니 난생처음 보는 연구 제안을 들을 때 누구는 이해를 잘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General Public에도 이해가 선명히 될 정도로 쉽고 명백한 논리로 발표하면 참 좋겠지만, 그건 더욱 쉽지 않은 부분이다. 청중의 배경을 어느 정도 고려하되, 대중들에게도 외계어처럼 들리지 않을 법한 Sweet Spot을 잘 찾으려고 노력하자.
두 번째는 ‘Delivery’다. 제스처도 포함되겠지만 그보다 우선시해야 할 것은 일단 말의 전달력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는 입을 떼자마자 사람들을 확 끌어당기는 느낌이 있지만, 누구는 최대한 집중하고 집중해야 겨우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물론 내 영어가 부족한 것도 한몫할 거다). 끝맺음을 짓지 않거나, 말을 뭉개가면서 하는 건 어디서나 좋지 않은 것 같다. 마이크가 있는 경우는 모르겠지만 너무 작게 말하면 잘 들리지 않으니, 이것도 문제다.
마지막으로, 박사 자격시험과 관련해 여러 선배가 해준 조언 중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 이대로만 하면 안 될 수가 없겠다.”라고 확신하며 가설을 입증하기 위한 최적의 실험 설계를 고안했더라도, 그 설계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다른 방법으로 가설을 뒷받침할 방안을 미리 생각해 두라는 것이었다. 왜 입증이 안 될 것 같은지를 생각하면서 내가 고안한 실험의 빈틈을 찾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누구도 하지 않았던 것을 하는 탐구하는 새로운 연구의 특성상 모든 가능성을 대비할 수는 없으니. 그냥 실패했다고 생각했을 때 차선으로 어떤 실험까지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두라는 것.
다시 한번 Chemical Biology라는 분야가 참 좋다고 느꼈는데, 이렇게 한 프로그램에 모여있음에도 흥미롭고 다양한 연구 주제를 꾸준히 접할 수 있다는 것. 3시간 넘게 내내 집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참 재미있게 잘 들었던 것 같다. 와중에 내 thesis project를 발표하는 날을 생각하니 무섭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는, 묘한 양가적 감정도 느끼며.
이후에는 점심을 먹은 후 연구실에 가서 저번 주에 이어서 합성을 이어 나갔다. 두 반응을 걸었는데, 한 반응의 목적은 실제로 촉매 반응의 결과를 추가적인 분리 없이 바로 GC로 확인할 수 있는지 검증하는 것이 첫째. 둘째는 product를 깨끗하게 분리한 뒤 NMR과 GC를 확인하여(starting material과 비교) model reaction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단백질을 넣었을 때 쉽게 그 변화를 관측할 수 있는지 기준점을 잡아두는 것이다. 다른 반응은 이제 로테이션이 막바지라 내가 촉매반응을 걸지는 못하지만, 포닥을 위해 substrate를 만들기 위함. 이후에는 채 1주일도 남지 않는 로테이션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현실적으로 어떤 부분까지 내가 건드리고 갈 수 있는지 정리하고 퇴근했다. 어제 너무 늦게 잠에 들기도 했고, 하루종일 빡세게 집중해서인지 매우 피곤해서 저녁도 먹지 않고 10시간을 내리 잤다.
Tuesday, December 3
푹 자고 일어났는데 다들 알겠지만 우리나라 입헌 정부 역사상 손에 꼽는, ‘비상계엄’이라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냐면 연구실의 다른 사람들이 찾아와서 물어볼 정도. 내 나라와 내 가족의 안부를 걱정해 줬다. 후… 사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블로그에는 굳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의견을 남기고 싶지 않다. 30분 내내 썼지만 그냥 올리지 않으려 한다. 한 가지, 난 작금의 상황이 굉장히 부끄럽다는 생각만 남긴다.
걸었던 두 반응의 work up을 끝내고 점심에는 Chai-1(a new multi-modal foundation model for molecular structure prediction)을 개발한 Chai Discovery라는 회사의 창립자들과 기술자들이 연구실 건물로 찾아와 이야기를 나눴다. Chai-1이 발표된 이후 우리 연구실에서는 이를 protein design workflow에 잘 활용하고 있었고(Alphafold3는 부분적으로 풀렸었던 상황에 성능도 더 좋다고 소개되었음), 이에 대해 의견을 묻고자 회사에서 직접 찾아온 것. 거의 모든 연구실의 사람들이 참여해서 presentation을 듣고, 치열한 질문이 오갔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아주 감사함이 느껴지면서도 small molecule drug discovery 측면에 논의할 때만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게 씁쓸하기도 했다.
오후에는 한 물질만 분리를 끝내고 발표 준비를 했다. NSO 때보다 더 많은 시간 준비한 만큼, 내 눈에 더 많은 부분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느껴져서 그에 대비한 질문을 준비하는 것도 한참 걸리는 것 같다. 무엇보다 즉흥적으로 적절한 단어를 뽑아내는 능력은 여전히 부족해서 부담이 크다.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오는 것도 좀 부담이고. 퇴근한 이후에는 Hub를 가서 직접 whiteboard에 적으며 연습하고, 집에서도 연습을 최대한 했다. 이제 진짜 밤은 절대 새지 못하고 2시 전에 자게 되는 듯. 뭐 사실 어떻게든 될 거라는 느낌도 있다 ㅋㅋㅋ 이 분야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 기본적인 질문만 들어올 것 같기도 해서.
Wednesday, December 4
대망의 발표 날이자, 애정하는 Chembio 수업의 마지막 날. 내 발표는 마지막에서 두 번째 였는데(친구가 근사한 단어인 ‘penultimate’를 알려줬다 ㅋㅋ second to the last와 같은 말이다), 앞에 친구들이 아우 정말 잘해서 긴장됐다. 그래도 하도 많이 연습해서 그런지 protected time까지는 순조롭게 했었고, 남은 15분 동안의 질의응답 시간도 나쁘지 않게 해냈던 것 같다. 빨리 내 학위 논문 주제를 정하고, 열심히 열심히 시간을 쏟아부어서 그 누구보다 그 주제만큼은 전문가가 된 후 발표하고 싶은 마음이 또 들었다.
점심을 먹고 출근한 뒤, 저번 주에 밥을 먹었던 약대 후배의 포스터 발표를 들으러 갔다. 크 설명도 참 잘하고 역시 어떤 분야이든지 본인이 열심히 해서 전문성을 지닌 부분을 자신감 있게 발표하면 참 멋있게 보이는 것 같다. 이후에는 나머지 한 물질의 분리까지 끝냈다. TLC 상으로는 분리가 꽤 어려워 보였는데 다행히도 깨끗하게 잘 된 것 같다. 어제 분리했던 물질까지 함께 NMR을 찍으려 했으나 예약을 해야해서(이거 참 불편하다) 내일 하기로 하고 일찍 퇴근했다.
바로 동기들과 함께 코스트코에 가서 연구실 사람들에게 줄 과자와 초콜릿을 포함해 장을 든든하게 봤다. 사실 93/7 소고기가 있을 줄 알고(인터넷에서 추천 단백질로 봤는데) 아쉽게 없어서 원래 사던 것만 샀다. 이후엔 집 청소를 싹 하고, 밀프렙도 하고. 오랜만에 여유를 즐겼다. 아 친구가 보내준 성격검사를 했는데 오… MBTI 유형 검사보다 좀 더 구체적이고 분야도 다양해서 꽤 재미있게 했다. MBTI에 질린 당신, 해보길 추천한다. 친구끼리 결과 공유도 SNS처럼 되어서 재미있기도 하다.
Thursday, December 5
오늘은 Racism in Science 마지막 수업! 최종 essay 공지와 함께, 지금까지 했던 내용에 대해서 간략하게 다시 wrap up을 했는데, 한 시간이 좀 지난 무렵 갑자기 쓰나미 경보가 정신없이 울렸다. 규모 7.0의 지진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근데 한 학생이 여기가 대피 권고 지역에 해당한다고 했고, 갑자기 수업이 취소됐다. 내가 봤을 때는 사실 campus 자체는 아슬아슬하게 대피 권고 장소가 아니었는데 뭐… 그러려니 했다. 다들 SNS 여기저기서 기괴한 사진을 퍼다가 공유하고, 한 친구는 본인 스쿠버 장비 옆에 대기 중이라고 농담으로 글을 올렸다. 12시 10분경 지진이 느껴질 수 있다고 했는데 뭐 아무 일 없이 그 전에 경보는 해제되었고, 여유롭게 점심을 챙겨 먹은 뒤 연구실로 출근했다.
NMR을 잘 확인하고, 마지막 반응으로 물이 일부분 섞인 buffer를 이용하여 반응을 두 개 걸었다. 하나는 단백질 안에 촉매가 이미 들어가 있는 것, 나머지는 단백질 없이 촉매를 따로 쓴 것. 이게 내 첫 로테이션 마지막 화학 반응이다! 내일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왔으면 좋겠다. 퇴근하고는 pizza talk를 가서 재밌게 얘기를 들었다. CCB 교수님 두 분이었는데, 한 분이 Chembio 수업을 총괄하셨다. 나이가 꽤 지긋하심에도 열정이 넘치고 아주 유쾌해서 절로 웃음이 나는 시간이었다 ㅎㅎ 직후에는 저번에 얘기한 두 친구가 다음 주면 진짜 떠나서 Bar에서 farewell 모임을 했다. 내일은 클럽에 간다는데 저번에도 얘기했듯이 난 잘 맞지 않아서 오늘 참여하고, 내일은 기숙사에서 열리는 pregame에만 잠깐 얼굴을 비출 예정. 우연하게도 International students만 따로 테이블에 앉았고 ㅋㅋㅋ 한 친구가 옆에 껴서 다섯 명이 얘기했다. 참으로 나는 어색한 걸 잘 못 참는다. 이 자슥들이 말이 별로 없어서 잘 되지도 않는 영어로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다 ㅋㅋㅋ 아 신기하게 그중 3명이 내가 같이 연구실을 진학하고 싶은, 똑똑하고 열심히 한다고 느껴지는 친구들이다. 다들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집에 와서는 전에 말했던 LoL을 친구들과 함께 몇 판 정도를 했다. 아 근데 생각보다 말을 많이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뭐 엄청 진지하게 게임에 임하는 것도 아니라 그냥 듣기 연습만 잘 되는 것 같다. 또 그렇게 재밌지도 않다. 너무 잘하는 사람들의 경기에 눈높이가 맞춰져서인지 내 비루한 실력이 썩 달갑지는 않다 ㅋㅋㅋ 게임은 그냥 내 인생에서 멀리 보내주는 걸로…
Friday, December 6
로테이션 마지막 날. 출근을 해서 두 반응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GC를 돌려놓고, Research in Progress 수업에 갔다. 난 Chembio 수업과 더불어 이 수업이 가장 좋았던 것 같은데, 당장 몇 년 뒤 내가 저 위치에 서서 CCB 전체 구성원에게 나의 연구를 어떻게 소개해야 하는지 직접적으로 배울 수 있기 때문. 다양한 연구를 보는 것도 즐겁고, 어떻게 사람을 사로잡는지 각자만의 전략을 구경하는 것도 흥미롭다. 또한 같은 내용을 듣고도 “와, 어떻게 저런 질문이 생각나지?”라는 감탄이 들게 하는 멋있는 선배들을 보는 것도 좋다. 수업이 끝나고는, 오늘이 나름의 공식 로테이션 종료일이라(물론 연구실마다, 학생마다 다르다) 동기 전체가 모여 학과장과 여럿 얘기를 했다. 이렇게 세심하게 챙겨주는 게 정말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한국에서는 이런 program 식의 운영이 대학원에서 되지 못한다는 게 참 아쉽기도 했다.
모임에서 피자를 든든하게 먹었기에 바로 연구실로 갔다. 아니 그런데 웬걸. 결과를 봤는데 우리가 원하는 그대로 결과가 나왔다.
- 물이 섞인 조건에서도 내가 원하는 반응이 진행됐다.
- 단백질을 넣은 조건에서도 진행이 된 것에 더불어, 더욱더 수율이 높았다.
사실 마음이 그렇게 가지 않았던(내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연구는 아니었으니) 프로젝트임에도 막상 가설에 부합하는 결과가 나오고, 포닥도 신나서 엄청나게 좋아하니까 나도 기뻤다. 또 이게 사실상 마지막 테스트 기회였기에 인생이 참 극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앞이 깜깜할 때도 있지만 역시 이런 순간들이 있기에 연구를 하는가보다 ㅋㅋ 로테이션 마무리하는 최종 발표에서 그래도 결과를 좀 가지고 발표하니 훨씬 안심될 것 같다. 뭐 이후에도 할 건 많지만 다행히 이 조건을 찾았다는 게 고무적이다. 원래 오늘까지만 하려고 했는데 월, 화에도 몇 가지 조건으로 GC를 돌려서 enantiomers를 분리할 수 있는지 볼 예정이다. 그냥 걸어놓고 Exit talk 준비하면 되니 부담은 없다.
돌아와서 내 벤치를 정리하고, 지금까지 만들었던 물질들과 자료들을 전부 멘토에게 공유했다. 편지와 선물도 전달했는데, 정말…미국에 온 지 한 달 남짓 된 상황에서 여러모로 쉽지 않았는데, 최고의 멘토를 만나서 어떻게든 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서 쓰면서도 감사함이 다시 한번 느껴졌다. 꼭 본인이 원하는 대로 1년 뒤에는 교수가 되어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기를 바란다. 나를 잘 챙겨준 한국인 박사님에게도, 옆 벤치를 같이 쓰며 이것저것 잘 알려준 대학원생에게도, 다른 합성 프로젝트의 멘토를 했던 졸업 직전인 대학원생에게도 선물을 전달했고, 연구실을 위해 과자도 남겨뒀다. ㅋㅋㅋ 뭔가 한국인 특징인가? 같이 로테이션하는 친구는 보통 이런 걸 준비하지는 않는다고 했는데 그래도 마음이 따뜻하다고 해준 거 보면 잘못된 행동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미리 친구에게 말도 했다). 세 시쯤에는 마지막 기념으로 연구실(다음 주에 Exit talk를 하는 연구실 말고) 사람끼리 Boba time을 즐겼다.
돌이켜보면 난 항상 영어가 부족하다는 핑계로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소통에 문제가 없는 한국에서도 누군가에게 크게 다가가지는 않는 편이기도 했지만, 조금 더 잘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다음 로테이션에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해 보려 한다! 퇴근하고는 두 친구를 배웅하는 마지막 자리에 잠깐 들렸다. 난 나 스스로 조심스럽고 꽤나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떤 단계를 넘어가면 정을 너무 주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가끔 든다. 두 친구는 우리 동기들의 분위기를 재미있게, 여유롭게 해주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해서 참 좋아했는데, 이제 못 본다니 슬펐다. 한 친구는 다음 주 exit talk를 해야 해서 그때가 마지막이겠지만, 한 친구는 내일 아침 바로 샌디에고로 간다고 한다. 둘 덕분에 즐거웠던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거기서도 모든 것이 잘되기를 바란다. 8시쯤 집에 도착했고 저녁을 먹은 뒤 푹 쉬다가, 내일 꼭! 운동을 하러 가기 위해(이번 주 한 번도 못 갔다🥲) 일찍 잠에 들었다.
Saturday, December 7
개운하게 일어나 바로 운동을 다녀왔다. 근력운동을 하는 그 순간 자체도 기분이 좋지만, 난 스트레칭을 하며 자세가 곧게 되는 순간도 엄청나게 좋아한다. 러닝까지 야무지게 오랜만의 운동을 마쳤다. 집에 와서 바로 아점을 먹은 뒤, 나름 고심해서 샀지만 전부 실패한 옷(무지 티, 무지 후드티, 무지 맨투맨)을 환불하고, 내일 있을 연구실 파티에 가져갈 cake를 사기 위해 Whole foods market에 갔다. 날이 그리 덥지 않고 맑아서 왔다 갔다 걸어가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또다시 아마존의 환불 정책에 감탄하며 모든 옷의 환불을 잘 마치고, 온갖 맛있는 것들 앞에서 한참 서성이다가 케잌을 골랐다. 크게 바닐라, 초콜릿, 당근 케이크가 있었는데, 당근케잌을 골랐다. 사실 난 당케는 당근 맛이 잘 안 나서 좋아한다.
집에 와서 이번 주에는 블로그를 거의 쓰지 않아 저녁 먹기 전까지 쭈우욱 글을 쓰고, 저녁을 먹은 이후에는 Hub에 나가서 다음 로테이션 시작 전에 해야 할 과제를 했다. 과제라고 표현하니 좀 어색한데, 무엇을 합성할지 고민해 보고 멘토에게 정리해서 전달하는 것이다. 발견한 Lead compound에서 일부분을 잘라내고, cysteine(amino acids 중에서 nucleophilicity가 가장 큼)을 target 할 수 있는 warheads를 달아보는 것. 이후 합성한 물질을 실제 mutated protein에 쳐서 labeling이 되는지 Gel로 확인한다고 한다. 드디어 Western Blot을 해 볼 수 있는 ㅎㅎ 다음 주 Exit Talk를 잘 마무리하고 논문도 미리 읽어가서 두 번째 로테이션을 잘 시작해 보려고 한다.